자녀 양육은 귀한 소명입니다
본문: 사무엘상 8장 1-3절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고생을 참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특히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셨고, 광복을 경험하고, 분단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모님 세대들은 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정말 많은 사람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세대입니다. 이와 같은 부모님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해외에 나가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밤에 밖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 깨끗하고 인터넷 속도도 제일 초고속입니다. 다른 나라 갔다가 우리나라 공항 딱 들어오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그래 이게 정상적인 인터넷 속도지’하고 생각이 바로 들거든요. 고층 빌딩도 많고 아파트도 많고, 지하철도 깨끗하고 잘 되어 있고, 차도 집집마다 1~2대씩은 거의 다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 +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필리핀 보다 못사는 나라로서 어쩌면 필리핀을 부러워하는 나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부모님들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사실 부모님의 은혜에 그만큼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말씀도 잘 따르지 않아요. 저도 그랬고요. 역대 많은 유명 인사들도 자식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다들 하는 말들이 ‘자식 일은 내 맘대로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도 이와 같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9절에서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얘기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과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능력의 종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그가 맡고 있던 사사라는 역할은 제사장과는 달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혼란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역할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로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미스바에서 무기 하나 없이, 그들이 나서서 직접 싸우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블레셋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한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이 있었지만,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은 대를 이어서 주어지는 직분이지만 사사는 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사명이었습니다.
사사가 맡은 일 중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사로 있으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바쁘게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혼자서 나라의 전체 재판을 감당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자연스럽게 바쁜 일들로 인해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말씀을 보면 사무엘은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해서 재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 사무엘이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해 자식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사사라는 이 권력을 이용해 마음대로 판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받고 자기 마음대로 판결해서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을 달라 요구하도록 만드는 불씨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어떤 사사도 자기 아들을 사사로 세워서 사사의 직분을 잇게 하는 사례는 없었습니다.
사사기 8장 22~23절 말씀을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사사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들들을 사사로 삼아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오히려 백성의 요구도 아닌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들들을 사사로 삼은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워지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자기 뜻대로 사사를 세운 것이죠. 게다가 자식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사무엘은 이것을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무엘을 보며 우리는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하는 사무엘도 자녀 양육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의 아들들은 자기 멋대로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무엘이 왜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나도 바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가정을 돌보기에는 사사로서의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무엘이 그럴 상황이 아니면 사무엘의 아내가 신앙교육을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의 자녀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 가운데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될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그것을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엘리 가문의 종말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자녀에게 신앙을 잘 전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부모님들이 각자의 직장에서 일에 전력을 다하다 보니 자녀들을 돌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같이 식사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학원 잘 보내주고, 잘 먹이고, 잘 입히면 될 것이라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길입니다. 돈이 우리 삶에 유익을 주는 것은 맞지만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잖아요? 우리 인생의 주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만들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문제에서는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부모님은 삶의 문제에서 어떻게 신앙으로 이겨냈는지 이런 것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이 간과하는 것이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교회에 일임하는 것입니다. 교육부서에서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시간입니다. 교회에 있는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의 삶의 주 터전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그들이 매일 지내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두세 시간 동안 들었던 말씀으로 그 은혜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녀의 신앙이 바로 세워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교육을 교회에만 맡긴다는 것은 아이를 학원에만 보내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학원에 보내놓으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아이가 공부하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가야 하는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가정에서 알려주고 가르쳐야 자녀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서 ‘가르치라’라는 말에는 ‘맛을 들이다, 맛을 알게 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번 들인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입맛을 제대로 들여놓으면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도 그 믿음의 맛을 기억하고 찾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각 가정에서 신앙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가정에서 자녀들의 신앙이 잘 자라나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둘째, 삶으로 믿음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실패한 것은 밖에서는 열심히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로 만들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고 그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사무엘 자신은 훌륭한 믿음을 소유한 자였을지 몰라도 자녀들은 그리되지 못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삶이 자녀들이 믿음을 갖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님이 삶으로 믿음을 보여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녀들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가정에서의 행동과 교회에서의 행동이 다르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 믿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신을 배우게 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아이들은 부모님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오늘 사무엘의 자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자녀들의 잘못이지만 그 배경에는 삶에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 사무엘의 잘못도 큽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제사장 엘리의 손에서 키워졌습니다. 엘리는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사무엘을 키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함부로 가져갔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사무엘도 똑같이 그 모습을 답습한 것입니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배우며 자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을 만든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어머니 전인항 여사의 신앙을 통해 믿음을 전수받았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정말 내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먹고살기도 어렵던 그 힘든 시절을 헤쳐 오면서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우리들을 대학까지 가르치셨다. 어머니의 일생은 한마디로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의 삶이었다. 내가 강조하는 경영철학 가운데 희생정신은 어머니에게서 영향받은 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께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네 차례씩 기도하고 찬송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김우중 회장님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기독교적 윤리와 도리를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은 “단정하게 앉아서 식사하라”였고, 두 번째는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였다고 합니다. 삶 속에서 기도의 본을 보이고 삶의 예절을 가르치고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가르친 결과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교회의 장로와 전도사로 섬기게 되었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 양육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귀한 소명입니다. 누군가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부모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가장 귀한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따라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신앙을 잘 전수하여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지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귀한 소명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통하여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하시며 그 사랑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각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그 기쁨을 자녀들에게 전할 수 있길 원합니다. 각 가정에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잘 심어주어 하나님을 경험하는 세대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부모님들을 사용하여 주셔서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이 땅에서 성공하는 인생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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