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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 부모와 자녀가 표현해야 할 사랑의 방법 (골 3:20-21)

나는 PRAYER 2022. 8. 10.

제목: 부모와 자녀가 표현해야 할 사랑의 방법

본문: 골로새서 3장 20-21절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가정에 아기가 생기면 삶이 많이 변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아기가 생기고 나면 자녀 양육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보게 됩니다. 그런 주제들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부모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닫게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자라는데 부모님이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셨겠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됩니다.

 

교육학자인 쿠주마 박사가 젊은 엄마로서 직접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계로 내놓았습니다. 1살, 3살, 5살 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루에 한 일을 정리해 보았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걸 보고 나니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더라고요.

하루에 32회의 기저귀를 갈고, 71회의 숟가락을 아기의 입으로 날랐으며, 화장실 변기에서 노는 아이들을 13번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옷에 음식물을 흘리거나 똥을 싸서 18번 옷을 갈아입혔고, 그네를 밀어준 것이 623번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하루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니들이 다 겪으신 일이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이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쿠주마 박사가 세 아이를 18살까지 키우는 데 들어간 시간을 계산해보니 18,000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을 날로 환산하면 750일이고요, 단순 계산으로도 2년이 넘는 시간입니다. 근데 이렇게 하면 감이 별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면 부모님의 헌신을 훨씬 이해하기가 쉬워요. 우리나라 한 달 근로자 월 근로시간이 최저임금 기준으로 209시간입니다. 한 달 동안 이 시간을 근무하면 191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18,000시간을 근무하려면 86개월을 근무해야 해요. 7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에요. 이 시간 동안 일을 했다면 최소 1억 7천만 원은 받았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근데 우리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부모님들이 이 돈 받으면서 양육하셨을까요? 아니죠. 오히려 우리 자녀들에게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키워내셨어요. 우리나라 자녀 1인당 양육비용 통계를 하나 보았는데 18세까지 드는 양육비가 약 3억 정도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하죠? 그만큼 우리 자녀들을 부모님들이 사랑하시고 그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투자하고 희생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 어린이들, 학생들, 청년들이 나와 있는데 부모님이 정말 많은 사랑을 주시고 사랑으로 나를 키우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큰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란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렇게 사랑으로 우리 자녀들을 기르셨고,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지금까지 잘 자라왔습니다. 이렇게 사랑 안에 멋진 믿음의 명문가로 세워지고 있는데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첫째, 우리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함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만 따라 해 볼까요?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하라!’

그래요. 이것이 바로 자녀들이 부모님께 행해야 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순종하라’라는 단어는 ‘아래에서 듣다, 주의 깊게 듣다, 명령에 귀 기울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순종하라’라는 것은 ‘들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한번 이렇게 따라 해 볼까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이 얘기하실 때 잘 듣나요? 우리 교회의 자녀들은 다들 착해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잔소리를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잔소리 같아서 너무 짜증이 많이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부모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면 부모님의 권위를 높여 드려야 해요. '내가 이 집의 왕이다,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버리고, 부모님이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상대방이 나보다 훌륭하고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 말을 들어요. 나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말은 잘 안 듣게 됩니다. 부모님이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시고, 나보다 더 많이 사셨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니 나에게 하는 말은 다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이 되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거예요. 들어야 순종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듣지 않고는 순종할 수 없어요. 부모님의 말씀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두 번째 문제예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내 의견보다는 부모님의 의견이 먼저임을 인정할 때 순종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부모님은 여러분이 잘되길 원하실까요? 아니면 여러분이 망하길 원하실까요? 당연히 잘 되길 원하시죠. 정상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위하고 자식을 나쁜 길로 인도하려고 하지 않아요. 부모님은 지금 내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고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세요.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새끼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으로 유명합니다. 아빠 가시고기는 엄마 가시고기가 알을 낳을 때가 가까워져 오면 몸에서 끈끈한 액체를 내서 알을 낳을 수 있는 둥지를 정성껏 만듭니다. 그리고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고는 곧 죽습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알 주변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알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어린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알 주위를 서성거리는 물고기와 벌레들로부터 목숨을 다해 새끼들을 지켜냅니다. 이렇게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끼를 보호하느라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도 못한 채 아빠 가시고기는 지쳐서 결국 죽고 맙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아빠의 희생도 모른 채 그 몸을 뜯어먹으면서 조금씩 자라납니다. 그럼 아빠의 몸은 결국 가시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물고기의 이름이 ‘가시고기’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고 가시만 남는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는 우리 자녀들이 되시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님 말씀을 잘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것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둘째,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의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어머님들만 한 번 따라 해 볼까요? ‘자녀의 용기를 북돋아 주라!’

 

21절에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낙심할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낙심하다’라는 말은 ‘의욕을 잃을 정도로 용기를 잃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보면서 자녀가 맘에 안 드는 행동들을 할 때 강하게 질타를 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너는 왜 이게 안 되니?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하니?’하고 자녀의 사기를 꺾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질타에 용기를 잃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부모님이 날 사랑하시는 게 맞나? 하는 의심도 들고 자포자기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가 올해 초에 아주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생각하면서 본 드라마가 있는데요. 바로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라 많이 못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법정에서 소년범들을 엄중하게 판결하려는 주인공 판사를 중심으로 한 법정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연 중 한 명인 강원중이라는 부장판사가 있습니다. 법관에서 22년의 경력을 가진 판사이고 매스컴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후에 국회의원 자리에 공천도 받는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바른 이미지의 판사였습니다. 그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인 ‘강신우’는 노력은 하지만 아빠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강원중 판사는 아들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질타를 했습니다. 자신은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판사까지 됐는데 모든 걸 지원해주고 공부하도록 하는데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그 결과 자신의 부족함에 낙담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일에 이 아들이 연관이 되고 맙니다. 바로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된 것이죠. 이 일은 결국 드러나게 되었고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받는 사건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담당 판사가 아버지가 되고, 국회의원 공천 뉴스까지 나오자 이 아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도에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이지만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분노하게 하고 마음을 낙심케 하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물론 오늘 말씀처럼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해서 그의 인격을 상하게 하는 말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배려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나를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해서 내 생각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마음을 자녀들이 누구보다 잘 알아주길 원합니다. 부모로서는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자녀는 내 생각에 따라 무조건 움직여야 하는 로봇이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한 인격체입니다.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이기에 자녀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녀의 생각이 더 옳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 생각을 강요하고 부당한 명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감정적으로 자녀들을 대하면 자녀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이것은 자녀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낙심하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며 반항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은 자녀에게 교훈을 주지도 못하고 자녀 교육에도 백해무익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들에게 주신 역할은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성장시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고 또 시기가 되면 내 품을 떠나 아름다운 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누구보다도 자녀의 생각을 읽을 줄 알고 자녀의 재능과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할 때는 칭찬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녀들이 좌절을 맛볼 때는 격려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더해 주셔야 합니다.

 

시인 박목월의 아들 박동규 교수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정신적 멘토가 바로,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박목월 시인은 먼저 남쪽으로 떠났고 그는 다섯 살짜리 여동생, 젖먹이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피난길에 오른 뒤 평택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됐지만 흉흉한 민심에 며칠 후 그의 가족은 쫓겨나 다시 서울로 가야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의 어머니는 아끼던 재봉틀을 쌀로 바꿔온 후 끈을 매어서 그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젊은 청년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무겁지? 같이 가는 길까지 내가 좀 져 줄게."

 

순진했던 그는 고맙다며 쌀자루를 맡겼지만 장성한 청년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따라가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뒤에 있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조해진 그는 청년에게 이제 그만 쌀자루를 달라고 했지만, 청년은 이를 무시한 채 더 빠르게 걸었고 결국 갈림길에서 어머니를 놓칠 수 없던 그는 쌀자루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도착했고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터진 그는 울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가족의 생명과 같은 쌀자루를 잃어버린 아들을 가만히 껴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았구나."

 

자신조차 스스로 바보 같다 생각됐지만 똑똑한 아이라며 보듬어 준 어머니의 한마디에 앞으로는 똑똑한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훗날 그는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 어머니가 자녀의 잘못을 크게 꾸짖고 혼냈다면 오늘날의 박동규 교수님은 없었을 것입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자식에게 던지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고 또 동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여 낙심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녀를 세워줄 때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자녀와 부모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의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부모와 자녀가 주 안에서 더욱 사랑하며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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