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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QT설교]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자가 사는 방법, 전 9:1-10 (12월 13일)

나는 PRAYER 2022. 12. 12.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자가 사는 방법

본문: 전도서 9장 1-10절

 

한 소년이 동산 위 무지개를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붙잡고 싶어 말 등에 올라타고 동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저 멀리 산 위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이번엔 산을 올랐습니다.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로 정상에 섰지만, 무지개는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무지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곤 실망한 소년은 피곤함에 지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꿈이 큰 소년이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의 황제로 군림했고 많은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패한 후 쫓겨간 유배지에서 초라한 죽음을 앞두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프랑스, 군인, 조제핀.”

그가 사랑한 조국 프랑스, 그의 명예와 긍지인 군인, 마지막으로 그와 이혼한 첫 아내 조제핀. 이 세 마디는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인생의 허무가 담긴 아쉬운 절규였습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폴레옹도,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도 결국엔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 세상의 것들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솔로몬은 이야기합니다. 2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죽음 앞에서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이 사람에 따라서 예외가 적용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이기에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이미 정해진 사실이라는 것이죠.

 

죽음은 결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사람이 직면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우리에게 정해진 것이나 죽음 이후에 영원의 시간을 천국에서 하나님과 살아갈 우리의 인생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삶이라면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헛된 인생이 아닌 이 땅에서의 유의미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4절에서는 사자와 개를 비교합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입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개는 매우 천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흐르는 시간이죠. 반면 카이로스는 기회의 때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카이로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크로노스, 즉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특별한 날로 만들어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말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안되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만드는 삶. 이것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성도로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할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로 만드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9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명심보감에서 보면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말입니다. 저도 많은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이 아주 공감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아내와 문제가 생기면 그날 종일 일에 집중도 안 되고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즐거운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참된 행복을 가정을 통해서 누리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나면 인생의 즐거움을 가정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다 마쳤는데 집에 가기 싫다든지, 밖에 잠깐 나가면 집 생각이 안 나고 밖에서만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불행이 시작된 가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밖으로만 돌다가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내가 죽는다 한들 가족 중 누가 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중에서 가정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소 단위가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애쓰고 수고한 것을 가정을 통해서 보상받게 하시고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행복한 곳으로, 천국 같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시간 속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또한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통해서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하루하루의 삶에서 죽음만 바라보며 인생이 헛되다고 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 앞에 열심히 일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인생, 하나님 주신 가정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인생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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