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자 다윗
본문: 사무엘하 6장 12-23절
오늘 말씀에서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원래 뛰어난 수금 연주자였습니다. 사무엘하 16장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났더라”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며 찬양하면 사울 왕에게 들린 악령이 쫓겨났습니다. 그는 수금 연주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좋아했습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양을 돌볼 때도 늘 수금을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고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열심이었는지 역대상 23장 5절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
다윗은 왕이 되어 나라를 정비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4,000명의 찬양대를 만들어 자신이 만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편에는 다윗이 지은 찬송가가 73편이나 수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사무엘하 23장 1절에 보면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스스로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부르기도 했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은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특별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그 모든 전쟁을 통해 영토 확장을 하고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안정을 찾은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된 하나님의 법궤를 가까이 모시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다시 세워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법궤를 제자리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궤는 어디 있었을까요? 아비나답이라는 제사장 집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다윗 왕이 법궤를 모셔오기 위해 앞장섭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봇이라고 하는 사람의 포도원에서 수레가 흔들려 법궤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수레를 몰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이를 받으려고 하자 죽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행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는 국가적인 거룩한 행사를 망쳐버린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큰 위기였습니다. 다윗은 서둘러 법궤를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맡겨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법궤는 사람들이 직접 메어서 옮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제일 앞장서서 제사장들이 나아갔습니다. 그때 제사장들이 메고 있던 것이 언약궤 즉 법궤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 없는 소들에 의해 법궤가 옮겨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식이었습니다. 다윗은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 섣불리 용기를 내서 다시 법궤를 들고 오려고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법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와서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뻤던 다윗은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으로 옮길 때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고 하나님의 궤가 옮겨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쁜 나머지 여호와의 궤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다윗성까지 돌아왔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찬송하려는 다윗의 소원은 이루어졌고, 다윗의 왕권은 다시 견고히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하길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무거운 법궤를 수레에 싣고 이동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요? 게다가 방법을 몰라서 떨어지는 법궤를 만진 것인데 그게 잘못인가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궤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주셨고 요단강 도하 사건을 통해서도 제사장들이 어떻게 법궤를 메고 갔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떤 놀라운 일을 보여주셨는지 그 능력의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길갈에 열두 돌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지고 제사장들조차도 그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일들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방법대로 법궤를 옮기자 성공했습니다.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온 이후로 나라가 더 견고하게 세워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하나님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예배에서 우리가 구경꾼의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시간과 땀과 수고를 드려서 예배하는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매일 드려지는 예배에서부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둘째, 예배드릴 때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법궤가 옮겨질 때 너무 기뻐서 옷이 벗겨지는지도 모르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미갈은 그 모습을 보고 다윗을 질책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옳은 행동을 했는지 미갈이 옳은 행동을 했는지는 그 이후에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법궤를 다윗성에 옮긴 후 나라가 더 견고하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미갈은 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셔서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길 원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기에 구경만 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들여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법궤가 옮겨지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기뻐 뛰며 찬양했습니다. 이런 사모함과 열정,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찬양할 때 기쁘면 기뻐 뛰시면 됩니다. 예배의 감격을 그대로 하나님께 표현할 때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예배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길 원합니다. 이 믿음으로 앞으로 드려지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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