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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QT설교] 결단의 신앙, 단 3:1-18 (11월 7일)

나는 PRAYER 2022. 11. 7.

결단의 신앙

본문: 다니엘 3장 1-18절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정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신앙의 위기를 맞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니엘의 꿈 해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에 바벨론은 세계적인 강국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큰지 전국을 127도로 나누어서 다스릴 정도의 대제국이었습니다. 이때 나라를 다스리던 왕은 느부갓네살 왕이었는데 너무나도 이상한 꿈을 꾸고 꿈을 잊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나라의 모든 지혜자들을 불러서 꿈을 맞추고 꿈을 해석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아무도 맞히지 못하다 결국 다니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꿈을 맞추고 꿈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에서 한 신상이 나오는데 이 신상은 부위별로 다른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머리는 금, 팔과 가슴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동, 종아리는 철, 발과 발가락은 철과 흙이 혼합된 형태였습니다. 여기서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는 바벨론은 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다니엘이 해석을 해준 것이죠.

 

다니엘의 꿈 해석 이후 바로 나오는 내용이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세운 이야기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의 시대가 금의 시대이고, 자기가 그 금의 시대의 왕이라는 해석을 듣고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 자신의 우상을 나라에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만들어 평지에 두고는 모든 이들이 거기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바벨론은 기본적으로 한 신을 믿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꿈 해석으로 인해 하나님을 높이기는 했지만, 그의 생각에는 모든 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 하나님이고 여전히 다른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개념에는 한 신만을 섬겨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다니엘의 꿈 해석으로 인해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지금 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사람에게 금 신상 앞에 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고 선포합니다. 왕의 명령에 모든 사람은 죽을까 두려워 한결같이 금 신상 앞에 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상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자 이 일을 참소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벨론 토박이인 갈대아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왕의 총애를 받고 총리가 되고 도지사가 된 것은 많은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공격할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께 절하지 않는다고 왕에게 전하는 것은 자기들이 다시 왕의 신임을 얻을 좋은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대로 절을 못 하겠다 선포하였고 용광로에 던져질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세 사람의 믿음의 결단을 보며 2가지 신앙의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용광로 앞에 던져지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무서워할 줄 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왕이 우상에게 절하라 할 때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여 우상에게 절할 것인가 아니면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하여 절하지 말 것인가로 고민이 될 때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기에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이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로 인해 도지사의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것도 알았습니다. 심지어 펄펄 끓는 용광로에 던져질 것도 알았지만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무모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느냐, 그냥 적당히 머리 숙여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적당히 타협하고 자리를 잘 지켜서 유다를 재건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이 더 큰 애국이고 지혜로운 신앙생활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믿음의 결단을 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더 크시고 하나님이 일당백, 일당 천, 일당만 해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능력이 되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세 사람의 신앙은 정말 성숙한 신앙이었습니다. 18절에 보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을 것이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왕 앞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광로에서 건져내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결단을 절대 저버리지 않겠다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조건을 달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제가 헌신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이 세 사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섬기겠다 말합니다.

 

이 정도의 믿음이 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놓아두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시면 그들이 죽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만한 엄청난 믿음의 결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러한 믿음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마음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들에 감사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신앙, 설령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선한 계획을 내 삶 속에서 가지고 계실 것이라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 가운데에도 격렬히 타는 용광로처럼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현장을 믿음의 현장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믿음을 드러내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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